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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 관련 글, 사진/KBS 한국의 유산181

한국의 유산 - 김준엽 일본으로 강제 징용됐던 학도병 탈출 1호 김준엽(金俊燁) 대한민국 광복군이 되기 위해 6천 리 장정에 오르다. 해발 3천 미터 죽음의 파촉령(巴蜀嶺) 일본군도 진격을 포기한 곳. 사지가 얼어붙는 설산의 행군. "잠이 들면 죽는다." 극한의 고통마저 이겨낸 독립의 의지. "못난 조상이 되지 말자." - 장정(長征) 중 "당시 일본군을 탈출한다고 하는 것은 일본군에게 엄청난 동요를 가져와서 일본군에게 큰 타격을 주는 그러한 상황이었습니다. 김준엽과 같은 지식인 청년들이 자신을 희생해가면서 독립운동에 참여했던 이 정신 이것이 독립을 쟁취할 수 있었던 원동력이 되었습니다." - 한시준 (단국대 역사학과 교수) 김준엽(金俊燁) 대한민국의 영원한 광복군으로 당신을 기억합니다. (*사진을 클릭하면 큰 사진을 보실 수.. 2013. 8. 14.
한국의 유산 - 사직단 토지의 신 '사'(社)와 곡물의 신 '직'(稷)에게 임금이 백성의 대표로서 평안과 풍년을 기원하던 사직단(社稷壇) 삼국시대부터 조선 시대까지 2천 년을 이어진 국가의 일급 제사 사직제(社稷祭) 궁궐 동쪽에 종묘, 서쪽에 사직을 두어 국가의 정신적 축으로 삼다. 그러나 일제의 조선 혼 말살 정책은 사직단을 공원으로 만들어 훼손. 서울에서 가장 신성한 곳에 빈터만이 남게 되다. "사직단은 농업을 중시하고 백성들을 사랑했던 옛 선조들의 얼이 깃든 공간입니다. 일제에 의해 훼손된 사직단을 복원하고 가꾸어 나가는 것은 우리의 정체성을 되살리는 길입니다." - 김문식 (단국대학교 사학과 교수) 사직단(社稷壇) 오직 국리민복을 위해 왕마저도 몸을 낮추었던 민본주의의 상징입니다. (*사진을 클릭하면 큰 사진을 보실 수.. 2013. 8. 5.
한국의 유산 - 모시 '그 올의 가늘기가 매미 날개 같고 밥그릇에 한 필이 다 들어간다.' - 계림유사 한여름의 날개옷 모시 바람이 머물다간 정갈한 자태. 한 필의 모시를 째는데 들어가는 침이 석 되. 모시 올을 잇느라 닳고 무뎌진 무릎. 열기와 습기를 머금으며 거치는 손길만 4천 번. 천오백 년을 이어온 장인정신 2011년 유네스코 인류 무형유산 등재. "모시는 땀이 잘 배지 않고 통기성이 좋아 청량감을 느낄 수 있었던 우리 한복의 대표적인 옷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 조상들이 무더운 삼복더위에 옷을 겹겹이 입고도 고운 자태와 품위를 지킬 수 있었던 생활의 지혜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 고부자 (한국전통의상 이학박사) 모시 손에서 손으로 전해 내려온 생활의 지혜입니다. (*사진을 클릭하면 큰 사진을 보실 수 있습니다.) 2013. 7. 29.
한국의 유산 - 의병장 고경명 1592년 왜군의 파죽지세로 보름 만에 함락된 한양. 고향 광주(光州)에서 후학을 가르치던 제봉(霽峰) 고경명(高敬命) 평생 글에 힘썼던 그가 두 아들과 함께 칼을 들다. 그때 나이 예순 '병사들은 우왕좌왕하고 수령들은 도망치는구나. 국가 존망의 위기에 어찌 제 몸을 아낄 수 있으랴. 오직 의(義)로 돌아가라.' - 전장에 나서며 썼던 「마상격문(馬上激文)」 중 그의 글에 6천 명이 모여 왜군에 분연히 맞서다. 금산전투를 지휘하던 중 둘째 아들 인후와 함께 전사. "임금과 고관대작들이 피난 가는 상황에서 우리의 가장 큰 힘은 각지에서 분연히 일어난 의병들이었습니다. 그 중 대표적인 인물이 의병장 고경명으로 비록 두 아들과 함께 순절했지만 이후 의병항쟁이 본격적으로 일어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습니다... 2013. 7. 22.
한국의 유산 - 김정희 추사체 "칠십 평생 벼루 열 개를 구멍 냈고 천 개의 붓을 닳게 했다." - 추사 김정희 각고의 노력과 경험으로 완성된 추사체(秋史體) 한 획 한 획... 글씨인 듯 그림인 듯 어린아이의 그것 같은 천진난만함. 바람처럼 거친 듯 돌처럼 투박한 듯 옛 서체를 평생 연구하고 광범위한 문헌을 습득하며 쓰고 또 쓰면서 깨닫고 도달하게 된 경지. "서법에 충실하면서도 그것을 뛰어넘는 추사체의 독창성과 창의성은 자신을 평생 단련한 결과였습니다. 그렇게 완성된 추사체는 당시 한자의 본고장인 중국의 서예가들조차도 감히 도달할 수 없는 위대한 경지였습니다." - 조정육 (미술평론가) 김정희의 추사체(秋史體) 벼루 열 개와 붓 천 개로 연마한 치열한 노력의 결실입니다. (*사진을 클릭하면 큰 사진을 보실 수 있습니다.) 2013. 7. 17.
한국의 유산 - 병산서원 조선 시대 서원 건축의 백미 병산서원(屛山書院) 선비들이 둘러앉아 글을 읽던 누각 만대루(晩對樓) 어디까지가 자연이고 어디까지가 건물인가? 자연과 건축의 경계를 허물다. 낙동강과 병산을 끌어안은 차경(借景)의 지혜. 구불구불, 가공하지 않은 기둥과 보가 만들어 내는 기묘한 수직과 수평. 건축이 자연을 불러들이니 비로소 자연도 건축을 품어낸다. "만대루에 앉아 있는 사람들이 외부의 이런 자연경관을 호흡할 수 있는, 품을 수 있는 요소를 제공하고 있다. 그래서 기둥과 기둥 사이가 일곱 칸이기 때문에 일곱 가지 이상의 풍광을 제공하고 있다. 그런 측면에서 건축학적 가치가 굉장히 높다고 봅니다." - 정연상 (안동대학교 건축공학과 교수) 병산서원(屛山書院) 자연과 건축이 어우러진 한국의 아름다움입니다. (*사진.. 2013. 7. 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