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넋두리

'체'와 '채'

by 골수야당 2011. 10. 5.

지난 토요일 MBC 오락 프로그램 '세바퀴'에서 나온 문제입니다.

"불의를 못 참고 무조건 나서는 남자친구랑 사귀기."
"불의를 보면 일단 못 본채 지나가는 남자친구랑 사귀기."

제목에서 밝혔듯이 두 번째 문장은 '본채'가 아니라 '본체'라고 해야 올바른 문장이 됩니다.

불완전 명사 "체"와 "채"는 소리가 비슷한 데다 쓰이는 환경도 비슷한 점이 있습니다.
그래서 잘못 쓰는 일이 많습니다만, 실은 이 둘이 전혀 다르므로 잘 구별해서 사용해야 합니다.

1) 그 때에는 서로 들은 체(도) 않았다. 그는 그 책을 본 체(도) 하지 않더라.
2) 주권을 빼앗긴 채(로) 살아 왔다. 그 여자는 몸을 엎드린 채(로) 울기만 했다.

1)과 2)를 보면 두 낱말이 다 같이 어미 '-은' 뒤에 배열되어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두 낱말이 쓰이는 문맥은 매우 다릅니다. 1)의 전체적인 의미는 '사실은 어떤 행위를 했지만 겉으로는 하지 않은 것처럼' 행동한다는 것입니다. 2)에서는 "주권을 빼앗긴" 것과 "몸을 엎드린" 것이 사실입니다.

이로써 "체"는 '꾸며서 함'을 뜻하는 문맥에, "채"는 어떤 상태가 '그대로임'을 뜻하는 문맥에 사용된다는 것을 확인하게 됩니다. 그리고, 1)과 2)에서도 일부 드러났듯이, 그 뒤에 따라오는 조사도 차이가 납니다. "체" 뒤에는 '-도'를 비롯하여 '-를, -만, -마저' 등이 두루 붙을 수 있지만, "채" 뒤에는 '-로' 정도만 붙을 수 있습니다.

다음의 3)과 4)를 통해서 또 다른 차이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3) 그 때에는 서로 듣는 체(도) 하지 않았다.
4) *주권을 빼앗기는 채(로) 살아 왔다.

"체"는 '듣는'에서 보듯이 어미 '-는' 뒤에도 배열될 수 있지만, "채"는 그렇지 못합니다.
4)가 어색한 것은 '빼앗기는'에 그 원인이 있습니다.

이 외에도 차이점이 있습니다. 5)에서 보듯이 "체하다"라는 낱말은 가능하지만, "채하다"는 불가능합니다.

5) 그 여자는 혼자만 잘난 체하더라. 잘 모르는 것이 아는 체하니 보기가 심히 사납구나.

말이 복잡하다 생각하실지도 모르겠는데 쉽게 말해서 '체'와 '채'가 헷갈릴 때는 '척'을 넣어 말이 되면 '체'로 사용하면 됩니다.

방송 자막이 엉망인 것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지만 단순한 대사의 전달이 아니라 문제로 출제할 때에는 조금 더 신경을 써야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