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0년 12월, 전세가 역전돼 유엔군에 떨어진 철수 명령.
절박해진 피난민들로 인산인해를 이룬 흥남 부두.
"군사 작전에 민간인을 포함할 수는 없다."
- 미 10군단 사령관 에드워드 알몬드
(*포함시킬(x) -> 포함할(o)
사동의 뜻을 더하는 접미사를 써서 표현하는 것보다 능동형인 '-하다' 접미사를 결합함이 더 좋습니다.)
"이대로 철수하면 저 사람들은 다 죽습니다."
- 현봉학 박사
미군 측 고문으로 일하던 한국 청년 현봉학의 끈질긴 설득으로 수송선 탑재 방식까지 변경.
마침내 시작된 기적의 항해, 무려 9만 8천여 명의 피난민을 구출.
"10만 5천 병력을 철수시키기도 쉽지 않은 상황에서 9만 8천여 명의 민간인까지 구출해낸 것은
세계 전쟁 역사상 유례가 없는 기적 같은 일입니다.
이런 흥남 철수작전의 숨은 공로자가 바로 현봉학 박사입니다."
- 황덕호 (흥남철수작전 기념사업회 회장)
'마지막 배를 타지 못한 사람들에 대한 미안함과 안타까운 마음에 잠을 이룰 수 없었다.'
- 현봉학 자서전 중
현봉학과 흥남 철수
포화 속에서 피어난 고귀한 인간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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