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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216

한국의 유산 - 백범 김구 1919년 상하이 임시정부에 투신한 백범 김구. 이듬해 그를 따라 상하이로 온 아내 최준례와 아들 인(仁). 1924년, 일본군의 삼엄한 감시에 임종도 지키지 못하고 폐병으로 떠나보낸 아내. 윤봉길 의거 후 포위망을 좁혀 온 일본 그리고 이어진 고된 피난길. 1940년 충칭으로 옮긴 대한민국임시정부. 임시정부에 헌신하던 어머니와 독립운동을 하던 아들 인(仁)마저 폐병으로 사망. "당시 폐병은 페니실린으로 고칠 수 있었는데 백범 선생은 미주 교포들에게 얼마든지 페니실린을 구할 수 있는 위치에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많은 동지가 폐병을 앓고 있는데 내 아들만 살릴 수 없다고 해서 결국은 아들이 폐병으로 죽었습니다." - 한시준 (단국대 역사학과 교수) 백범(白凡) 김구(金九) 숭고한 희생으로 대한민국임시정부를.. 2013. 4. 8.
한국의 유산 - 격쟁 정조(正祖)의 수원 행차를 그린 8첩 병풍, 화성능행도(華城陵幸圖) 구름처럼 모여든 백성, 그런데 한 사람이 꽹과리를 치기 시작한다. 임금의 행차 때 징이나 꽹과리를 친 뒤 억울한 사연을 호소하는 제도 격쟁(擊錚) 글 모르는 평민과 천민을 위한 소원(訴願)제도. 사회기강을 위협한다며 신하들이 반대하자 정조는 일갈한다. "고할 데 없는 저 불쌍한 백성... 저들은 실로 죄가 없다. 그렇게 만든 자들이 죄인이다." "백성의 민원을 신속하게 처리하기 위해 격쟁은 여러 기관에서 접수한 지 3일 이내에 국왕에게 보고하도록 했고 필요할 때는 암행어사나 관리를 보내 철저히 검증케 했습니다. 소통을 중시했던 정조 때는 격쟁의 건수가 1,300여 건으로 이전보다 두세 배에 이르렀습니다." - 김준혁 (경희대학교 교양학부.. 2013. 4. 1.
한국의 유산 - 황준량의 민폐 10조 상소문 1556년 단양군수로 부임한 금계 황준량(錦溪 黃俊良) 부역과 조공에 시달리며 기아에 허덕이던 백성. '관(官)은 백성을 근본으로 삼는 법이거늘, 백성을 이 지경으로 버려두고서야 관은 있어 무엇하랴.' 곤궁한 백성의 삶을 보다 못해 조정에 올린 4,800자의 글 민폐 10조 상소문(民弊 十條 上疏文) '흉년이면 도토리로 연명하는 실정입니다. 온 고을이 폐허가 되었으니 이토록 시달릴 줄 누가 알았겠습니까.' - 황준량의 민폐 10조 상소문 중 재목, 종이, 산짐승, 약재 등 열 가지 공납의 폐단을 적어 명종(明宗)을 감동하게 하다. (* 감동시키다 (x) ->감동하게 하다, 감동을 주다 (o) '~하다'의 자리에 '~시키다'를 쓰면 좋지 않습니다. '~시키다'는 '남에게 어떤 일을 하게 하다'의 뜻으로 쓰.. 2013. 3. 25.
한국의 유산 - 부여 왕흥사지 사리기 2007년 10월 부여 왕흥사지에서 출토된 백제 유물들. 수천 개의 유물과 함께 발견된 부여 왕흥사지 사리기. 높이 10.3cm의 청동 사리합. 합 속에 품은 은제 사리호, 그 안에서 발견된 금제 사리병. 1400년 전 금속의 성질을 이해하고 예술로 승화시킨 백제의 문화. "사리장엄 법식은 안으로 들어가면서 점점 귀한 재질로 여러 차례 싸고 또 싸서 안에 넣는 거죠. 이 사리를 봉안한 연유와 정확한 연대. 이런 부분들이 그대로 담겨 있는 백제사 연구 자료로서도 매우 중요한 자료입니다." - 김연수 (국립고궁박물관 유물과학과장) '정유년(577년) 백제왕 창이 죽은 아들을 위해 탑을 세웠다.' 부여 왕흥사지 사리기 찬란한 백제 세공술을 담은 시대의 걸작품입니다. (*사진을 클릭하면 큰 사진을 보실 수 있습.. 2013. 3. 18.
한국의 유산 - 동궐도 가로 6m, 세로 3m에 이르는 조선 시대 최대 회화. 창덕궁과 창경궁의 200여 년 전 모습을 담은 16권의 화첩. 국보 제249호 동궐도(東闕圖) 건물의 이름과 나무와 괴석 하나까지 빠뜨리지 않은 세밀한 묘사. 1820년대 당대 최고의 도화서(圖畵署) 화원들이 그린 정밀 조감도. 일제에 의해 훼손되기 전 동궐의 원형을 담고 있는 유일한 그림. "동궐도는 건물의 배치는 물론 조경까지 실제 모습 그대로 묘사한 조감도와 같습니다. 따라서 훼손된 창덕궁과 창경궁을 복원하는 데 필요한 고증자료로서 그 가치가 매우 높다고 할 수 있습니다." - 조명철 (고려대학교박물관 관장) 동궐도(東闕圖) 고궁의 숨결을 간직한 고귀한 유산입니다. (*사진을 클릭하면 큰 사진을 보실 수 있습니다.) 2013. 3. 11.
한국의 유산 - 운암 김성숙 '나는 이 몸을 나라에 바쳤으니 나라를 위해서 희생(犧牲)할 수만 있다면 나는 나의 할 일을 다 한 것이다.' - 1964. 2. 13. 김성숙의 일기 중 승려의 신분으로 3·1 운동을 주도, 투옥과 고난 속에서도 독립운동의 길을 걸었던 운암 김성숙(雲巖 金星淑) 항일독립운동단체 의열단 조선민족전선연맹 조선의용대 활동. 임시정부 내무차장, 국무위원으로 보낸 망명생활. 모든 것을 바친 광복의 길. 그러나 해방된 조국에서 가난과 지병으로 쓸쓸히 숨을 거두다. "승려 출신 독립운동가로 평생을 조국의 광복을 위해 투쟁했고 말년까지 어떤 불의와도 타협하지 않고 오로지 민족의 앞날만을 고민했던 진정한 독립운동가입니다." - 이동언 박사 (한국독립운동사연구소 책임연구위원) 1982년 건국훈장 국민장 추서. 운암 김성.. 2013. 2. 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