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KBS216

한국의 유산 - 한지 한겨울 삭풍을 막아주던 따뜻함. 먼지는 거르고 빛은 통과시키는 지혜로움. 천 년을 지키는 종이 한지(韓紙) 목숨을 지키는 갑옷이 되다. '지갑(紙甲)도 화살을 막을 수 있으니 각 도의 감사·병사에게 많은 수효를 제조하게 하소서.' - 인조실록 16년 "철판으로 만든 갑옷이 너무 무거워서 대신 가벼우면서도 철갑 못지않은 강도를 가진 한지로 갑옷을 만들어 썼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 김양진 (원주 한지 테마파크 관장) 강인한 생명을 불어넣는 고집스러운 물질 흘림뜨기 "(흘림뜨기는) 섬유를 상하 좌우로 교차시켜서 종이의 강도를 높이는 우수한 역할을 합니다." - 김형진 (국민대학교 임산 생명공학과 교수) 천 년을 사는 종이 한지(韓紙) 수천 년 이어갈 우리의 자랑입니다. (*사진을 클릭하면 큰 사진을 보실 .. 2013. 1. 7.
한국의 유산 - 성산 일출봉 성(城) 같은 모양에 일출이 아름다워 붙여진 이름. 수중 화산체가 분화하며 만들어낸 자연의 절경.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 성산 일출봉(城山 日出峰) 조선 시대 왜적이 침입하면 불을 피워 알리고 백성을 보호했던 봉수대. 떠오르는 태양을 보며 국태민안을 염원했던 간절한 소망의 터. "제주도 전체를 보호하기 위해서 소식을 알리는 첫 번째 장소였다는 측면이 있고요. 신성한 공간으로 여겨졌기 때문에 제주도 전체의 안녕을 기원하는 장소였습니다." - 이기봉 (국립중앙도서관 고서전문원) 성산 일출봉(城山 日出峰) 온 누리를 비추는 새해를 보며 한 해의 소망을 담아봅니다. (*사진을 클릭하면 큰 사진을 보실 수 있습니다.) 2013. 1. 2.
이어령의 80초 생각나누기 - 따뜻한 청진기 청진기 하면 목에 청진기를 걸친 의사선생님이 떠오릅니다. 아이들이 나무막대기 끝에 귀를 대고 소리를 듣는 놀이를 보고 프랑스의 의사 르네 라에네크(Rene Laennec, 1781~1826)가 발명한 것이라고 합니다. 그것이 거의 200년 전의 일이라고 하니 그동안 얼마나 많은 의사가 얼마나 많은 환자에게 이 청진기를 사용해왔을까요? 그런데도 우리는 아직 한국의 한 여의사처럼 청진기를 가슴에 품고 있다가 환자를 진찰했다는 이야기는 듣지 못했습니다. 청진기가 갑자기 살에 닿으면 차갑습니다. 환자는 그것이 가슴이나 배에 닿는 순간 섬뜩한 느낌을 받지요. 임산부의 경우라면 배 안의 태아가 놀랄 것입니다. 그런데 60년 전 막 병원을 차린 한국의 한 여의사는 그 청진기를 자기 가슴에 품었습니다. 몸으로 데워진 .. 2012. 12. 24.
한국의 유산 - 세화 묵은해를 보내고 새해를 맞는 기쁨의 인사. 복(福)을 빌고 무병장수를 기원하며 건넸던 그림 세화(歲畵) '도화서(圖畵署)에서 수성(壽星), 선녀, 직일신장(直日神將)의 그림을 그려 임금에게 드리고, 서로 선물하는 것을 세화라 한다.' - 동국세시기 중 액운을 물리치고 학문에 정진해 벼슬하기를 곡식을 지키고 화재가 없기를 바랐던 선조의 연하장. "우리 선조는 일찍부터 세화를 집안이나 대문에 붙여 가택을 보호하도록 했습니다. 동시에 행복과 장수, 자손이 번성하기를 기원하는 그림입니다." - 김용권 (경희대학교 교육대학원 미술교육과정 교수) 세화(歲畵) 송구영신(送舊迎新)의 소망을 전하던 따뜻한 우리의 마음입니다. (*사진을 클릭하면 큰 사진을 보실 수 있습니다.) 2012. 12. 24.
이어령의 80초 생각나누기 - 삼 척 젓가락 저승에서 살아 돌아온 사람이 말했습니다. 천국과 지옥은 똑같다고... 사는 집, 입는 옷, 먹는 음식까지도 다 같다는 겁니다. 삼 척 길이의 젓가락으로 밥을 먹어야 하는 그 규칙마저도 다를 게 없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그 긴 저승 젓가락이 문제였습니다. 음식을 집어 먹으려고 해도 젓가락이 길어 입에 들어가지 않습니다. 팔을 굽히고 목을 빼고 몸뚱이를 아무리 비틀어도 소용이 없습니다. 남의 젓가락 끝에 매달린 고기를 먹으려고 입을 대다가 큰 싸움이 벌어지곤 합니다. 삼 척 젓가락은 창처럼 찌르고 치는 무기가 됩니다. 유황불 속에 떨어진 사람들이 아비규환을 하는 지옥 풍경이 그대로 연출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천국은 다릅니다. 음식을 집어 앞에 앉아 있는 상대방 입에 넣어주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서로 고맙다고.. 2012. 12. 18.
한국의 유산 - 오리 이원익 '비바람도 가리지 못하는 집에 떨어진 갓을 쓰고 쓸쓸히 지내니 아무도 그가 재상인 줄 알지 못했다.' - 인조실록 12년 1월 29일 필부로 고향에 돌아오니 노년에 가진 것은 비 새는 초가집 한 채뿐. 영의정만 여섯 번 40년을 재상으로 지낸 조선의 청백리 오리(梧里) 이원익(李元翼) 그 청렴함을 기려 인조(仁祖)가 집을 하사하자 사양하며 그가 남긴 말 '신을 위해 집을 지으니 이것도 백성의 원망을 받을 일입니다.' - 관감당 하사교서 中 "(인조가) 집 한 채를 지어줬더니 안 들어가겠다는 걸 강제로 살게 해서 집을 한 번 받은 적은 있으나 그 이외에는 절대 사양하고 받질 않았어요." - 이성무 (한국역사문화연구원 원장) '세상을 사랑하는 데는 백성만 한 것이 없고 몸을 다스리는 데는 욕심 버리는 것만 .. 2012. 12. 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