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92년 왜군의 파죽지세로 보름 만에 함락된 한양.
고향 광주(光州)에서 후학을 가르치던
제봉(霽峰) 고경명(高敬命)
평생 글에 힘썼던 그가 두 아들과 함께 칼을 들다. 그때 나이 예순
'병사들은 우왕좌왕하고 수령들은 도망치는구나.
국가 존망의 위기에 어찌 제 몸을 아낄 수 있으랴. 오직 의(義)로 돌아가라.'
- 전장에 나서며 썼던 「마상격문(馬上激文)」 중
그의 글에 6천 명이 모여 왜군에 분연히 맞서다.
금산전투를 지휘하던 중 둘째 아들 인후와 함께 전사.
"임금과 고관대작들이 피난 가는 상황에서 우리의 가장 큰 힘은 각지에서 분연히 일어난
의병들이었습니다. 그 중 대표적인 인물이 의병장 고경명으로 비록 두 아들과 함께 순절했지만
이후 의병항쟁이 본격적으로 일어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습니다."
- 김덕진 (광주교육대학교 사회교육과 교수)
의병장 고경명(高敬命)
의로써 나라를 구하고자 했던 애국정신의 표상입니다.
(*사진을 클릭하면 큰 사진을 보실 수 있습니다.)
'방송 관련 글, 사진 > KBS 한국의 유산' 카테고리의 다른 글
한국의 유산 - 사직단 (1) | 2013.08.05 |
---|---|
한국의 유산 - 모시 (1) | 2013.07.29 |
한국의 유산 - 김정희 추사체 (0) | 2013.07.17 |
한국의 유산 - 병산서원 (0) | 2013.07.10 |
한국의 유산 - 정절공 정갑손 (4) | 2013.07.0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