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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 관련 글, 사진/KBS 한국의 유산181

한국의 유산 - 홍범도 1990년, 오랜 세월이 지나서야 고국에 알려진 한 독립투사의 일지. 일지의 주인은 봉오동, 청산리 전투 대승의 주역인 대한독립군 총사령관 홍범도(洪範圖) 장군. "일병 103명이 내 처와 아들을 잡아가 내 행방을 물으려 반죽음을 시켜도 끝내 항복하지 않았다." - 1908년 2월 18일 "정평에서 50명 일병과 싸워 의병 여섯과 중대장이던 내 아들 양순이 죽었다." - 1908년 5월 18일 함께하던 두 아들과 아내마저 잃어야 했던 고난의 독립투쟁. 그러나 꿈에 그리던 해방을 2년 앞두고 타국땅에서 쓸쓸히 죽음을 맞다. 홍범도(洪範圖) 고난 속에서도 조국을 먼저 생각했던 당신의 이름을 기억합니다. (*사진을 클릭하면 큰 사진을 보실 수 있습니다.) 2012. 2. 27.
한국의 유산 - 조선악극단 1932년 이철(李哲)이 설립한 국내 유일 조선인 음반회사 오케(OKEH) 레코드사. 고복수, 이난영, 남인수, 김정구 등 당대의 명가수들을 모아 조선 최고의 무대 예술단체 조선악극단(朝鮮樂劇團) 결성. 국내뿐만 아니라 일본, 만주, 중국에서도 활발한 순회공연. "우리 문화의 정체성을 지키는 동시에 세계적 유행 조류를 접목해 낸 탁월한 감각. 그것이 동북아 국제무대에서 조선악극단이 성공한 원인이었습니다." - 이준희 (성공회대학교 외래교수) 현지의 폭발적인 반응으로 일본 영화 출연, 음반 발매. 신문과 잡지에도 대서특필. 조선악극단 한국의 대중문화를 세계에 알린 한류의 시작입니다. (*사진을 클릭하면 큰 사진을 보실 수 있습니다.) 2012. 2. 19.
한국의 유산 - 세책례 조선 시대 서당에서 책 한 권을 뗄 때마다 어김없이 했던 예식. 스승과 동문수학하던 벗들에게 음식을 차려 감사를 표하던 조촐한 잔치 세책례(洗冊禮). 오래 학문에 정진하라는 뜻의 국수와 학문을 가득 채우라는 뜻의 송편으로 차린 소박한 상. 게으른 학생에겐 부지런할 勤(근) 성미 급한 학생에겐 참을 忍(인) 성적표 대신 글자를 봉투에 담아 선물했던 스승의 답례, 단자수신(單字修身) "(세책례의) '세'자는 씻는다는 뜻이 아니고 갈고 닦는다는 뜻입니다. 몸가짐과 행동, 앉아도 단정하게 앉아서 몸을 닦는 공부를 하라는 뜻으로 단자수신을 써줬습니다." - 노상복 (한국역사문화연구원 성고서당 훈장) 세책례(洗冊禮) 학업보다 인성과 배움의 자세를 먼저 생각했던 선조의 교육철학입니다. (*사진을 클릭하면 큰 사진을 .. 2012. 2. 13.
한국의 유산 - 조선의 온실 15세기 생활과학서 산가요록(山家要錄)에 나온 온실에 대한 기록. 삼면(三面)은 황토로 벽을 쌓고 남쪽 전면엔 경사진 창살을 놓아 바닥에 구들과 배양토를 까는 구조. 창살에 바른 기름 먹인 한지가 빛의 투과성을 좋게 해 보온효과를 높이다. 바닥에 놓인 구들로 흙 온도를 높이고 가마솥 수증기로 습도 조절. "세종실록에 보면 강화도 온실에서 겨울에 귤나무를 재배했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이는 500년 전 조선의 온실이 얼마나 탁월한 과학적 구조를 가졌는지를 보여주는 것입니다." - 정해곤 (강화군청 농업기술센터 농학박사) 1619년에 지은 독일의 온실보다 170여 년이나 앞선 세계 최초의 온실. 조선의 온실 한겨울에도 꽃을 피웠던 빛나는 과학기술입니다. (*사진을 클릭하면 큰 사진을 보실 수 있습니다.) 2012. 2. 6.
한국의 유산 - 환구일록 태평양, 대서양을 건너 시베리아 바이칼호수까지 11개국 6만 8,400리. 1896년, 더 큰 세상을 배우기 위해 조선 최초로 세계 일주를 떠난 세 사람 민영환과 김득련, 윤치호 그들이 남긴 기행문 환구일록(環璆日錄) "프랑스와 싸운 뒤 극히 부강해졌네. 육군은 정교하고 예리하며 서양에서 으뜸일세." - 베를린에서 "통상 한지 오십 년 만에 각 나라 교묘한 기예를 거두지 않은 게 없고 서양 조계는 정리된 길이 부두에 닿아있다." - 상하이에서 큰 변화를 읽고 더 넓은 세계로 나아가고자 했던 116년 전 조선의 발자취. "세계의 동향을 아주 구체적으로 기록했고, 근대로의 지향이라는 시대적 과제를 안고 있었던 조선 지식인의 고뇌를 충분히 읽어볼 수 있습니다." - 신병주 (건국대 사학과 교수) 환구일록(環璆.. 2012. 1. 30.
한국의 유산 - 곽주의 편지 1989년 현풍 곽씨의 후손들이 12대 조모의 묘 이장 작업 중 발견한 오래된 문서. 17세기 조선 선비 곽주가 평생에 걸쳐 아내와 주고받은 백여 통의 편지. "어제오늘 자식들 데리고 어찌 계신고 기별 몰라 걱정하네. 생선 한 마리를 보내니 자식들하고 구워 잡수시오. 자네는 가슴 앓던 데가 좀 좋아져 계신가. 내 마음 쓰일 일이 하도 많으니 자네라도 몸이 성하면 좀 좋을까." - 곽주의 편지 중 떨어져 사는 아내의 안부와 아이의 옷가지 하나까지 세심하게 챙겼던 가장의 마음. 조선 시대 가부장적 권위보다 우선했던 애틋한 가족애. 곽주의 편지 가족의 의미를 생각하게 하는 조선 선비의 기록입니다. (*사진을 클릭하면 큰 사진을 보실 수 있습니다.) 2012. 1. 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