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 관련 글, 사진/KBS 한국의 유산181 한국의 유산 - 장기려 박사 1951년 부산에 세워진 초라한 천막 진료소 복음 병원. 피난민, 행려병자 등 돈이 없어 병원 문턱도 넘지 못했던 소외된 이웃을 위한 나눔의 공간. 성공한 의사, 풍족한 삶 대신 가장 낮은 곳에서 환자를 돌본 병원장 장기려(張起呂) 박사 "가난한 사람도 치료를 받을 수 있어야 한다. 그것이 내 소명이다." 1968년 최초의 민영의료보험인 청십자의료보험조합 설립. 의료복지의 기틀을 마련하고 평생 이웃을 위해 헌신하다 1995년 병원 옥탑방에서 눈을 감다. "1960년대 우리나라가 아직 건강보험제도가 없을 때 돈이 없고 병원에 가기 어려운 사람들이 보험에 가입해서 싼값으로 치료할 수 있도록 해서 인간 사랑을 실천한 사회복지사업가였습니다." - 차흥봉 (한국사회복지협의회 회장) 장기려(張起呂) 박사 나눔의 철.. 2012. 9. 10. 한국의 유산 - 광화문 태조 4년(1395년) 경복궁과 함께 창건된 궁의 정문 세종 8년(1426년) 집현전 학자들에 의해 광화문(光化門)이라 이름을 얻다. 광화(光化) 바른 정치로 온 세상에 빛을 드리우다. 광화문 앞에 육조(六曹) 관아를 설치하고 도성의 큰 길을 내다. 왕의 자리에서 신하의 공간으로 다시 백성의 삶 터를 이어주는 조선 정궁(正宮)의 문. "광화문의 입구를 통해서 백성의 삶의 장소인 도성 안이 보입니다. 이것은 임금의 마음과 백성의 마음이 문을 통해서 서로 소통되도록 하는 장치로서의 의미가 있습니다." - 이강근 (서울시립대 건축학부 교수, 문화재청 문화재 전문위원) 광화문(光化門) 온 세상에 빛을 드리우는 열린 통로이자 민족의 문입니다. (*사진을 클릭하면 큰 사진을 보실 수 있습니다.) 2012. 9. 3. 한국의 유산 - 고종의 투구 1964년 발간된 한 일본인의 수집품 기록 '오구라 컬렉션 목록' 일제 강점기에 무단 반출된 1,000여 점의 우리 문화재. 그 속에서 발견된 투구(胄), 갑옷(甲), 익선관(翼善冠). 구한말 고종(高宗)이 사용했던 제왕의 물품. 조선의 정치, 군사적 자주권의 상징. 도쿄국립박물관에 소장된 돌아오지 못한 조선의 얼굴. 빼앗긴 국권의 상징을 되찾고자 2011년 시작된 민간 환수운동. "조선 왕실에서 대대로 전래했던 투구와 갑옷 그리고 익선관과 같은 문화재는 한 민족의 정신을 대변하는 이른바 민족적인 신물이라고 불릴 수 있습니다. (일본에서) 인질처럼 잡고 돌려주지 않는다는 것은 받아들일 수 없는 일입니다." - 혜문 스님 (문화재 제자리 찾기 대표) 고종(高宗)의 투구 국권침탈의 아픈 역사 되찾아야 할 우.. 2012. 8. 26. 한국의 유산 - 주산지 왕버들이 몸을 담근 천혜의 비경. 길이 100m 너비 50m 수심 7.8m 주왕산 끝자락에 앉은 인공 저수지 주산지(注山池) 가뭄을 예방하기 위해 정성으로 물을 가두다. "주산지는 우리 마을의 쌀독입니다. 오늘날까지 가뭄 없이 농사를 짓고 있고 농사를 짓는 데 필요하니까." - 임성도 (경상북도 청송군 이전마을 이장) 장마철 빗물이 들고 농수(農水)로 물이 나는 지혜의 물길. 300년을 한결같이 농민들의 든든한 젖줄이 되어주다. "주산지는 역사적으로 농민들이 믿고 의지해온 저수지였고 옛날 왕들도 찾을 만큼 아주 뛰어난 경치를 보유한 곳이었습니다. 또한, 주왕산 내에 있어서 생태계의 보고로서 큰 기능을 하고 있습니다." - 신병주 (건국대학교 사학과 교수) (* ~에 위치 (자리)하고 있다.(X) -> ~.. 2012. 8. 22. 한국의 유산 - 금강호 1922년 여의도 식민지 조선, 5만여 동포 앞에 모습을 보인 한 대의 비행기. 한반도 지도를 양 날개에 그려 넣은 1인승 단발 쌍엽기. 금강호(金剛號) 동포의 성금이 모여, 독립의 열망이 모여 동해를 건넌 작은 비행기. 버려진 비행기 부품을 조립해 금강호를 만든 사람, 조선 최초의 비행사 안창남. "1,100 미터 이상 높이 뜨니 벌써 경성이 보였습니다. 독립문 위에 떴을 때 서대문 감옥에 갇혀있는 형제들도 거기까지 찾아간 내 뜻과 내 몸을 보아 주었을지..." -1922년 개벽, 안창남 인터뷰 中 "1920년대 중반 독립운동은 상당히 침체되어있던 상태였습니다. (금강호의 비행으로) 주목을 받고 그것을 통해 우리의 독립의지를 고취하려고 했던 것입니다." - 조규태 (한성대학교 역사문화학부 교수) 금강호.. 2012. 8. 15. 한국의 유산 - 이상균 (수정본) 1956년 멜버른 올림픽 레슬링 최종전. 최고의 우승자가 고개 숙여 경의를 표한 이. "경기가 끝나고 그가 손을 내밀었다. 나는 위대한 레슬러에게 경의를 표했다." - 무스타파 다기스타니 (멜버른 올림픽 레슬링 금메달) 회고록 중 한국전쟁 중 세 개의 손가락을 잃은 레슬러 이상균. 레슬링 사상 최초의 올림픽 4위. 정신력으로 빚어낸 값진 승리. "마지막 올림픽 경기라 생각하니 눈물이 솟는 것이다. 그러나 눈물을 보일 수는 없었다. 나는 한 나라를 대표하는 운동선수로 내 조국의 품격을 높이고 싶었다." "암울한 시기에 레슬링인에게 희망과 금메달의 포문을 열어주신 분이시기에 정신력을 저희는 많이 배웠습니다. 그분의 사랑 그리고 레슬링인으로서의 가치관을 많이 배웠습니다." - 김원기 (1984 LA 올림픽 레.. 2012. 8. 10. 이전 1 ··· 8 9 10 11 12 13 14 ··· 31 다음